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선거 출마를 포기하면서, 2024년 11월에 치러지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 대한 전망이 더욱 불투명해지고 있다.
만약 이 선거에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된다면 한미관계와 동북아시아의 안보 상황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다수의 한국 국민들은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다면 방위비 분담금 인상이나 주한미군 철수 등을 추진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한국의 자체적 핵무장을 추진해야 한다는 여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 핵무장 여론 대두
한국 핵무장 여론은 결국 트럼프의 당선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케이틀린 탈마지는 트럼프가 이전 재임기간 중에 “군비 통제에 대한 적극적인 적대감과 핵 위험에 대한 무모한 태도”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또, 트럼프는 “미국의 동맹에 대한 깊은 경멸”의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이것 때문에 핵확산이 시작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 일본, NATO 회원국들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약속이 트럼프에 의해 철회된다면, 이들 국가가 “자체 핵무장을 시도하거나 중국과 러시아 같은 적대적 핵무장 국가와 타협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견해에는 미국의 국제전략연구소의 빅터 차 역시 동의한다. 그는 트럼프가 재선된다면 “김정은과 북한의 핵실험을 중단하는 대가로 미국의 대북 제재를 해제하는 거래를 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또한 빅터 차는 트럼프가 재선된다면 실제로 주한미군 철수를 추진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빅터 차는 트럼프의 재선은 한국 등 아시아의 동맹국들로 하여금 핵무장을 추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할 것이라고 탈마지와 같은 결론을 내린다.
이처럼 많은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재집권은 여러 가지 경로로 한국의 핵개발을 촉진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문가들의 견해는 한국의 대중들의 생각과 얼마나 일치하고 있을까?
한국 국민들은 트럼프 당선 후 한반도 정책 변화의 가능성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이러한 인식은 한국의 핵무장 필요성에 대한 찬성 여론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가.
트럼프의 공포와 한국 핵무장 여론 조사
한국의 안보정책의 근간은 한미동맹이다. 동맹이론가들은 동맹 관계에서 발생하는 딜레마를 “연루의 공포(fear of entrapment)”와 “방기의 공포(fear of abandonment)”라고 구분한다.
연루의 공포는 자국에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전쟁에 동맹 때문에 끌려 들어갈 위험성을 의미한다.
방기의 공포는 “동맹국이 자국에 대한 공약을 이행하지 않거나 동맹국의 지원이 기대되는 상황에서 필요한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을 뜻한다.
이런 맥락에서 트럼프의 당선으로 촉발될 수 있는 한미동맹의 균열을 우리는 “트럼프의 공포(fear of Trump)”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국민들은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는 경우 한미관계에 어떤 변화가 올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을까?
2024년 KINU 통일의식조사의 “올해 11월의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만약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한미관계가 어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52.2%가 한미관계가 나빠질 것이라고 응답했다.
이어서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방위비 분담금 인상”,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파기”, 그리고 “미북정상회담”의 가능성이 어떨지에 대한 국민들의 전망을 물어보았다.
한국 국민들은 트럼프가 다시 미국 대통령이 된다면 방위비 분담금이 상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하고 있었다(77.0%).
그리고 응답자의 56.5%는 트럼프가 김정은과 다시 만날 것이라고 답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주한미군과 관련된 질문으로, 42.9%가 트럼프가 주한미군의 감축 혹은 철수를 결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한 것이다.
아예 한미동맹을 파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답변도 31.7%에 달했다
같은 조사에서 한미동맹이 한국에 필요하다는 응답은 91.6%에 달했다.
즉, 한국인들은 한국의 안보를 위해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고 있다.
KINU 통일의식 조사는 2021년부터 “우리의 국방을 위해 주한 미군 주둔과 핵무기 보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라는 문항의 조사를 실시했다.
이 문항에 대한 응답분포는 한국인들이 주한미군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2021년과 2023년 조사 결과는 거의 유사했다. 거의 절반 가까운 응답자들이 한국의 자체 핵무기 보다 주한미군을 선택했다고 답했다.
KINU 통일의식조사를 포함한 여러 여론 조사에서 60%를 넘는 응답자들이 핵개발이 필요하다고 답한 것을 생각하면, 이는 주한미군에 대한 한국인들의 긍정적인 태도를 잘 보여주는 결과이다.
그런데 2024년 조사에서는 처음으로 주한미군과 핵무기 보유에 대한 선호가 역전되었다.
아직 40.1%의 한국인들이 주한미군을 더 선호하지만, 이제 44.6%의 한국인들은 주한미군보다 한국이 스스로 핵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답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는 무엇 때문에 발생했을까?
트럼프의 공포, 실존하는가
일반적으로 여론의 변화에는 무수한 변수들이 영향을 준다. 하지만 이 글에서 주목하는 것은 ‘트럼프의 공포’가 핵무기 선호를 높였을 가능성이다.
<그림 3>과 <그림 4>의 그래프는 트럼프의 공포가 핵무기 찬성 여론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서 보여준다.
우선, 트럼프가 당선되면 주한미군을 감축하거나 철수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핵보유를 찬성하는 비율은 70.1%였다.
반면, 트럼프가 주한미군을 철수할 가능성이 낮다고 답한 이들 중 핵보유 찬성 비율은 이보다 10%나 낮은 60.5%에 그쳤다.
즉, 트럼프가 주한미군을 철수할 가능성이 높다고 믿을수록, 한국의 핵무기 개발을 찬성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러한 관계는 방위비분담금에 대한 태도에서도 발견되었다.
다시 말해,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한미관계가 악화되고 한국이 더이상 미국의 핵우산으로 보호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한국이 핵개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았다.
반면, 트럼프가 미북정상회담을 개최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들의 68%가 핵보유를 찬성하지만,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64.3% 찬성률을 보여 그 차이는 크지 않았다.
한미동맹의 파기의 경우에는 트럼프의 공포가 핵보유 찬성여론을 오히려 약간 낮추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다른 변수들을 통제하여 회귀분석을 실시했을때는 한미동맹 파기와 핵보유 찬성여론 사이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발견되지 않았다.
반면, 방위비분담금 인상과 주한미군 철수에 관련된 트럼프의 공포가 핵보유 찬성여론을 높이는 효과는 다른 변수들(정당, 이념, 교육, 북핵 위협, 미국 핵확장억제에 대한 태도 등)을 통제하여 회귀분석을 실시하였을 때도 통계적으로 유의미했다.
이러한 분석결과는, 앞서 인용한 전문가들의 우려가 이미 한국 국민들의 여론에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트럼프 1기를 경험한 한국 국민들은 그가 재집권하는 경우 한미동맹과 이에 기반한 한국의 안보에 매우 부정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
특히, 방위비 분담금의 상승 가능성, 그리고 주한미군의 감축 또는 철수 가능성에 대해 많은 우려를 하고 있다.
이 우려는 한미동맹 이외의 대안, 즉 한국의 자체적 핵무장을 통해 한국의 안보를 강화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나타났다.
시사점
아직 미국 대통령 선거의 결과를 예측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만약 실제로 그가 차기 미국 대통령이 될 경우 한국은 지금까지의 안보정책을 기초에서부터 다시 검토해야 할 상황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다.
트럼프의 공포가 현실화될 경우, 핵무장을 요구하는 한국의 여론은 자칫 정부가 감당하기 힘들 수준으로 커질 가능성이 있다.
한국의 핵무장은 한국 뿐만 아니라 NPT 체제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이 핵을 갖는다면 아시아에서는 미얀마, 대만, 일본 등도 핵개발을 진지하게 검토하게 될 것이며, 러시아의 위협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유럽의 폴란드, 우크라이나 또한 핵개발을 시작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핵개발을 찬성하는 여론의 추이를 주의 깊게 모니터링하고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대중에게 핵무기 개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여 여론의 급격한 변동을 막아야 할 필요가 있다.
또, 전문가들과 정책결정자들의 심도깊은 논의를 통해 한미관계의 안정적인 유지와 발전 방안을 국민들에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