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 전기차의 높은 가격, 제한된 주행거리, 배터리 안전성 문제 등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이러한 이슈를 해결하고 전기차의 대중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배터리 기술의 혁신이 필수적이다. 중국에서는 반고체 배터리가 상용화되면서 전기차 및 배터리 업계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반고체 배터리 주목 이유 : 전기차 성장 둔화
시장이 반고체 배터리 산업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전기차 수요의 성장세가 과거 예상 대비 둔화하면서 향후 성장 속도가 불투명해졌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 SNE리서치는 2022년 전년대비 60%의 고성장률을 보인 전기차 시장이 2024년에는 16.6%의 성장률을 보일 것이라 전망하기도 했다.
전기차 성장 둔화의 가장 큰 원인은 전기차가 아직 대중에게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딜로이트가 지난해 실시한 글로벌 전기차 소비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로 높은 가격(미국), 짧은 주행거리 (독일), 그리고 배터리 안전성(중국)을 들었다.
특히 지난 겨울 한파로 인한 전기차 방전 사태로 큰 불편을 겪었던 미국에서는 저온 배터리 성능 저하(33%)가 배터리 안전성(33%)만큼 우려되는 요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전기차 대중화 시대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고객의 불편 해소가 필수적이다.
전기차의 가격과 성능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배터리 기술의 혁신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중국의 일부 배터리·전기차 기업들은 ‘반(半)고체’ 배터리를 상용화시켜 고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배터리·전기차 업계는 한국, 일본 기업이 개발 중인 전고체 배터리보다 일찍 상용화한 반고체 배터리를 주목하고 있다.
해당 기술이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를 견인하는 혁신 솔루션이 될지, 혹은 과도기에 있는 개선 기술에 그칠지가 관심사이다.
반고체 배터리 뜻과 구조
반고체 배터리는 전해질을 반고체 형태로 변경하여 안전성을 높인 기술이다.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와 비교하여 주행거리, 충전 속도, 저온 성능이 향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높은 제조원가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반고체 배터리를 이해하기 위해 리튬이온배터리(이하 LiB)의 기본 구조를 먼저 살펴보자.
기본적으로 LiB는 양극,음극, 분리막, 그리고 전해질로 구성돼 있다.
양극과 음극에 있는 리튬이온이 전해질을 타고 양극과 음극 사이를 이동하며 충전과 방전이 되는 원리이다.
대부분의 LiB는 액체 전해질을 사용하는데, 전고체 배터리는 고체 전해질을, 반고체 배터리는 고체와 액체 중간 형태의 물질
로 이루어진 전해질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기존 액체 전해질을 고체, 혹은 반고체 전해질로 변경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고체 배터리 핵심, 반고체 전해질
우선 고체, 반고체 전해질은 액체전해질보다 배터리의 안전성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다.
액체 전해질은 가연성이기 때문에 외부 충격으로 인해 배터리 바깥으로 흘러나오면 발화나 폭발의 위험이 있다.
배터리가 과열될 경우에도 배터리 내부에서 액체 전해질이 기화하여 부피가 팽창하고, 이로 인해 배터리가 폭발할 수도 있다.
따라서 외부 충격에도 형태를 유지할 수 있고, 가연성이 약한 고체, 반고체 전해질을 통해 배터리의 안전성을 높이려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반고체 배터리를 전고체와 비교해보면, 전고체 배터리가 안전성, 성능 개선 효과에서 우위를 갖지만, 개발 난이도와 경제성 측면에서는 반고체 배터리가 유리하다.
반고체 배터리의 제조 공정은 기존 LiB와 유사하여 배터리 공정 설비나 소재의 변경점이 적고, 가격이 높은 고체 전해질이 적게 투입되므로 제조원가가 전고체보다 낮다.
반면, 전고체 배터리는 양산하기 위한 신규 공정기술 개발이 선행되어야 하고, 고가의 고체 전해질 소재와 생산 설비로 인해 기존 LiB 대비 5배 이상 높은 원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전고체 배터리에 비해 반고체 배터리가 개발을 늦게 시작했음에도 더 빠르게 상용화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참고) 파우치형 반고체 배터리
전고체, 반고체 배터리는 파우치형으로 개발하는 것이 용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배터리는 대개 차세대 음극 소재인 리튬메탈이나 실리콘 소재를 적용하게 된다.
충방전할 때 음극이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기 때문에 배터리의 외부 케이스 소재는 음극 팽창의 압력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각형, 원통형 배터리는 외부가 금속 캔으로 이뤄져 있어 내부 압력이 과하게 높아지면 케이스가 손상될 수 있다.
반면, 파우치형은 얇은 알루미늄 필름 형태의 외장지로 감싸고 있어 내부 압력에 따라 외장지가 늘어나면서 높은 내부 압력을 견디기에 유리하다.
그런 이유에서 대표적인 각형 배터리 기업인 CATL도 반고체, 전고체 배터리에 있어서는 파우치형을 채택하고 있다.

반고체 배터리, 전기차 약점 극복 Key
반고체 배터리는 전기차 대중화의 핵심 요건인 안전성뿐만 아니라 주행거리, 충전 속도, 저온 성능에서 기존 주력인 LiB보다 진일보한 개선이 예상되고 있다.
① 주행거리 제고
첫째, 반고체 배터리는 기존 LiB보다 EV의 주행거리를 높일 수 있다.
EV의 주행거리는 배터리의 에너지밀도와 비례하며, 반고체 배터리는 차세대 음극 적용을 통해 기존 LiB보다 높은 에너지밀도를 가질 수 있는 기술로 평가된다.
차세대 음극인 리튬메탈은 이론적으로 기존의 흑연 음극 대비 10배 이상의 에너지밀도를 갖는 소재이다.
그러나 충방전 반복 시 안전성과 수명이 떨어지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이는 리튬이온이 리튬메탈 음극의 표면에 결정 상태로 불균일하게 축적되어 분리막을 손상시키기 때문인데, 반고체 전해질은 이러한 리튬 결정의 축적 현상을 제어하기에 유리하다.
반고체 전해질은 리튬메탈과의 반응성이 액체 전해질에 비해 낮아 전해질 분해나 리튬 결정 축적이 액체 전해질보다 훨씬 적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고체 배터리에 리튬메탈 음극이 성공적으로 적용된다면, 높은 에너지밀도를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② 충전속도 향상
둘째, 반고체 배터리는 충전속도를 향상시킬 수 있다.
고속 충전 또한 실리콘, 리튬메탈 등 음극 소재에서의 혁신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데, 중국에서는 이미 반고체 배터리에 차세대 음극 소재를 적용하여 충전 속도를 높이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 초급속 충전기 기준으로 전기차 충전에는 일반적으로 약 20분이 걸리는데, 실리콘 음극은 이론상 5분만에 충전을 완료할 수 있다.
이에 CATL 등 주요 중국 배터리 기업은 음극재 내에 실리콘 비중을 높인 반고체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향후 출시되는 반고체 배터리는 현 LiB 대비 충전 성능이 개선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③ 저온에서의 성능 저하 개선
셋째, 반고체 배터리는 저온에서의 성능 저하를 개선할 수 있다.
지난 겨울, 미국에 발생한 극심한 한파로 인해 전기차의 배터리 방전 문제가 대두됐다.
미국 외에도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지역에서는 전기차의 저온 성능, 전비 저하에 대한 불만이 표출되고 있다.
배터리의 저온 성능은 저온에서 배터리의 이온 전도도가 높을수록, 즉 충방전 중 리튬 이온의 이동이 활발할수록 우수하다.
액체 전해질은 상온에서는 이온전도도가 높지만, 저온과 고온에서 이온전도도가 크게 낮아진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고체 전해질은 저온에서도 리튬이온이 이동하는 경로가 어느 정도 유지되어 이온전도도가 떨어지지 않는 장점이 있다.
반고체 배터리의 경우 고체 전해질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기존 LiB보다 저온 성능이 개선되는 셈이다.
④ 넘어야 할 난관 : 제조원가
단, 기존 LiB 대비 높은 제조원가는 반고체 배터리가 넘어야 할 주요 난관이다.
반고체 배터리의 높은 제조원가는 반고체 배터리에 들어가는 고체 전해질에 주로 기인한다.
하지만 향후 셀의 에너지밀도가 개선되면 원가 상승폭을 배터리 팩, 차량 시스템의 최적화를 통해 상쇄시킬 수 있다.
안전성이 개선된 반고체 배터리에서는 배터리 팩의 화재 안전성 설계나 차량의 냉각 설계를 축소하여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또한 높은 에너지밀도에 따른 배터리 경량화를 통해 차량의 전비가 개선되고, 타이어, 서스펜션 등 차량 부품의 내구성 부담이 감소하는 등 차량의 유지비용이 경감되는 부가적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상용화에 접어든 중국 반고체 배터리
중국 내에서 반고체 배터리 관련 주요 기업으로는 전기차 OEM인 Nio와 배터리 기업인 CATL, EVE 에너지가 있다.
신흥 전기차 OEM인 Nio는 배터리 스타트업 WeLion과 공동으로 개발한 반고체 배터리를 자사 전기차 모델인 ET7에 시범 적용해 올해 6월부터 공식 출시할 예정이다.
Nio의 반고체 배터리는 배터리 스왑 서비스에 적용돼, 고객이 교체 배터리에 갖는 안전성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6월, 중국 광동 지방의 배터리 스왑 스테이션에서 발생한 배터리 팩 화재 이후, Nio는 자사의 교체 배터리가 안전한 상태인지, 교체 과정에서의 화재 발생 위험은 없는지에 대한 우려를 들어왔다.
Nio가 중국 기업 중 가장 먼저 반고체 배터리를 전기차에 적용한 것은 자사 배터리 스왑 시스템의 안전성에 대한 고객의 신뢰를 구축하려는 노력으로도 해석된다.
배터리 선도 기업 CATL
배터리 선도 기업인 CATL은 2022년 세계 친환경차 컨퍼런스에서 ‘응축배터리(Condensed Battery)’의 개발 컨셉을 최초로 공개한 바 있다.
CATL의 응축배터리는 기존 LiB보다 월등하게 높은 에너지 밀도(단위 무게당 에너지 용량)를 강점으로 내세웠다.
공개된 응축배터리의 에너지밀도는 500Wh/kg에 달하여 기존 LiB의 이론적 한계로 여겨지던 350Wh/kg을 크게 상회하는 수준인데, 이는 리튬메탈 음극을 적용하여 구현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 회사는 중국 국유 상용항공기 제조사와 협력 하에 항공기용 응축배터리를 개발 중인데, 이미 2023년 상해모터쇼에서 전기차용 응축
배터리도 개발할 계획임을 발표했었다.
CATL은 차세대 소재를 반고체 배터리에 적용하여 차세대 배터리 분야에서의 기술 리더십을 유지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CATL은 현재 1세대 반고체 배터리에서는 전해질만 반고체로 변경하고, 2, 3세대에서는 각각 리튬메탈 음극과 황 양극을 적용하여 목표 에너지밀도인 500Wh/kg을 달성할 계획이다.
이는 CATL에게 반고체 배터리가 단순히 전해질을 변경하는 기술이 아니라, 소재 혁신을 앞당겨 차세대 배터리 기술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한 기반이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한국 일본 배터리 기업, 반고체 배터리 부정적
한국, 일본 배터리 업계 일각에서는 중국의 반고체 배터리를 기술 혁신보다는 마케팅 효과에 집중된 기술이라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기존 LiB보다 제조원가가 높은 반고체 배터리는 고객의 요구 가격을 충족시키려면 단기적으로 수익성을 만족시키기 어려운 면이 있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이 단기 수익성보다는 차별적 성능을 가진 배터리의 조기 상용화에 중점을 두고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Nio의 사례처럼 고객의 Pain Point를 유의미하게 해소할수 있는 수준으로 성능 혁신을 달성한다면 시장이 반고체 배터리가 탑재된 전기차를 마냥 홀대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다.
또 중국 기업들이 반고체 배터리를 통해 경쟁국 대비 차세대 배터리 소재의 연구개발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도 있다.
리튬메탈, 실리콘 음극 등은 기존 LiB에서 제어하기 어려워 연구 개발 단계에 머문 상황이다.
그러나 반고체 배터리는 차세대 음극 소재를 상용 기술에 적용해볼 수 있는 테스트베드(Test Bed)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차세대 음극 소재는 비단 반고체 배터리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닌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를 위해 수반되어야 하는 필수 기술이다.
때문에 전고체 배터리의 기술 경쟁에서도 중국 기업이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차세대 배터리 기술, 전기차 시장 둔화 해소에 기여할 것
차세대 배터리 기술은 전기차 소비자의 Pain Point를 극복하여 전기차 시장의 성장 둔화 해소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고체 배터리가 차세대 기술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여러 난관을 해결해야 하나, 이를 통해 유의미한 기술로 발전할 가능성 또한 지나칠 수 없다.
국내 배터리 기업은 중국 배터리 기업보다 늦게 반고체 개발에 착수하였지만, 반고체 배터리의 개발 및 상용화 기간이 짧은 만큼 그 격차를 충분히 따라잡을 여지가 있다.
국내 배터리 기업이 전기차 대중화로 가는 흐름을 주도하고 기술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반고체 배터리 등 혁신 기술의 상용화 가속에 더욱 민감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