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하 속도가 생각보다 늦을 수 있는 이유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금리 인하 시점과 강도에 관심을 갖고 있다. 금리 인하 시작 후 1~2년 안에 팬데믹 직전의 낮은 수준으로 돌아갈 것으로 기대한다. 
1990년대 이전의 고금리 시대보다 2010년대의 낮은 금리를 경험한 사람들은 일단 금리 인하 시작과 동시에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지레 짐작한다. 하지만 금리 인하는 시작되더라도 그 속도는 생각보다는 느릴 수 있다.

금리 인하 기대하는 시장

금리 인하 시작은 언제가 될까. 팬데믹 이후부터 최근까지 대출금리는 크게 상승했다. 지난해 말 은행권의 신용대출 금리는 6% 중반을 기록했으며, 이자 비용은 3년 새 약 3배로 증가했다.

따라서 요즘 경제주체들은 금리 인하가 신속하게 진행되길 바라지만 과거의 추세를 보면 생각과는 다를 수 있다.

결론적으로 금리 인하는 곧 시작될 것이다. 적어도 2026년까지는 지속적으로 금리 인하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2026년의 금리 수준이 지금 시장의 기대보다는 높을 수 있다.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가 느리고, 통화당국이 참고하는 적정금리 자체가 상승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올해 시작될 금리 인하는 처음에는 느리게 진행될 수 있다.

상당기간이 지나서야 속도가 빨라지는 궤적을 따를 가능성이 높다. 이에 향후 2~3년 동안은 금리 부담이 쉽게 줄어들지는 않을 것 같다.

금리 인하 느릴 수 있는 첫 번째 이유 : 물가 안정

금리 인하가 완만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이는 주된 요인 중 하나는 인플레이션이 느리게 안정화되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 모두 인플레이션이 최고치를 찍은 후 상당히 하락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기저효과 때문이며, 인플레이션이 기조적으로 하락하여 완전히 해소된 것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물가상승률이 내려가기 시작하면, 시장은 종종 인플레이션이 완전히 해소될 것으로 섣불리 예단한다.

그러나 IMF의 연구 결과(2023년)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56개국에서 발생한 인플레이션 충격 사례 중 60% 정도만 5년 이내에 인플레이션이 해소됐다.

해결되지 않은 경우의 대부분에서 인플레이션율이 충격 이후 약간 하락하다가 다시 상승하거나 높은 수준에서 정체됐다.

한국경제는 자원 수입과 상품 수출에 크게 의존하므로, 국내 물가 안정 가능성을 분석하기 위해 글로벌 요인과 국내 요인을 모두 고려해보자.

금리 인하 시점을 늦추고 강도를 약하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인 한국과 미국의 물가 상승률 차이

물가 안정 관련 이슈 점검 : ① 탈세계화

세계화는 팬데믹 이전까지 물가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이는 원자재를 비롯한 생산요소를 저렴한 국가에서 수입하여 대체함으로써 가능했다.

유럽중앙은행의 연구에 따르면, 세계화에 따른 GVC 참여 증가, 무역 통합, 정보 세계화 등이 글로벌 상품 가격을 상당히 낮춰왔다.

그러나 코로나 전후 발생한 미중갈등과 각국의 보호주의 정책, 돌발적인 지정학 충돌 등이 이어지며 이러한 물가안정을 저해하고 있다.

세계경제에서도 무역 규제, 무역 및 GVC의 후퇴, 정보 및 기술 공유의 감소 등 탈세계화 현상이 당분간 두드러질 것이다. 이는 글로벌 공급망 비효율성 증가, 수입 및 생산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선진국 주도로 자국 내 공급망 확충을 위한 비효율적인 중복투자가 빈번해지고, 국제 에너지 공급망 변화를 우려한 개별 국가의 에너지원 전환 비용도 발생한다.

또한 보호주의 정책으로 내수 독점력이 강해진 기업들이 중간이윤을 늘리기 위해 가격을 인상할 유인이 커, 이로 인해 물가 상승을 자극할 수 있다.

금리 인하 강도가 낮을 수 있는 이유. 탈세계화

물가 안정 관련 이슈 점검 : ② 이상기후

탈세계화 외에도 이상기후로 인한 국내외 식료품 공급 불안, 가뭄 및 소요에 따른 물류의 영향 등으로 상품 가격의 급등락을 반복하며 물가 변동성을 증가시킬 것이다.

기업들은 대개 물가 하락 때보다 상승 시에 더 빠르게 반응하기 때문에 가격 변동성은 일반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한다. 이는 금리 인하 시점과 강도를 낮출 수 있다.

물가 안정이 어려운 이유. 이상 기후

물가 안정 관련 이슈 점검 : ③ 공공비용 인상

작년 국내 물가를 크게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 부문은 개인서비스, 공공요금, 공업 제품 순이었다. 팬데믹 이전과 대비하여 팬데믹 이후 서비스업의 인건비는 크게 상승했다.

공공요금의 경우 오는 7월 서울시가 지하철 요금을 인상할 예정이며 그동안 상대적으로 억눌려온 가스 및 전기 요금 인상도 단행될 수 있고 9차례 연장된 유류세 인하도 줄어드는 등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꾸준한 공공요금의 상승은 고정 비용 성격이 강하다. 그리고 모든 제품에 포함되는 비용이기에 전반적 물가 상승을 야기할 수 있고 금리 인하를 지연시킬 수 있다.

물가 안정이 어려운 이유. 공공비용 인상

물가 안정 관련 이슈 점검 : ④ 단위노동비용 상승

한국의 단위노동비용 상승률도 팬데믹 이전 대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명목임금 상승률이 팬데믹 이전에 비해 소폭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성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위노동비용의 상승은 기업의 제조원가를 높여 제품가격의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물가 상승 압력은 자연스럽게 금리 인하 시점과 강도를 낮추게 된다.

인플레이션이 해소되는 이론적인 ‘마지막 단계(the last mile)’는 초기의 물가 상승 충격에 따른 직·간접 파급효과까지도 완전히 해소되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이를 구체적으로 상품 품목 간 파급효과 감소, 상품과 서비스 간 파급 효과 감소, 기대 인플레이션과 실제 인플레이션의 상호작용 축소, 근원인플레이션의 안정화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달성된다고 분석한다.

금리 인하 느릴 수 있는 두 번째 이유 : 적정 금리

금리 인하 속도가 완만할 것으로 생각하는 두 번째 요인은 통화당국이 기준으로 상정하는 가상적인 ‘적정금리’, 즉 중립금리 자체가 그동안 상승했을 가능성 때문이다.

통화당국은 금리를 이용하여 물가안정을 달성하고자 할 때 경제 상황을 고려한 이론적인 적정금리 수준을 가정하고, 가능하면 이를 따르려고 한다.

팬데믹 이전 수십 년 동안 추세적으로 적정금리 추정치의 하락세가 관찰되었는데, 마르코델 네그로(Marco Del Negro) 뉴욕 연방준비은행 자문위원, 고티 에거츠슨(Gauti B.Eggertsson) 브라운대학 교수 등은 생산성 및 잠재성장률 하락, 인구 고령화, 소득 불평등 확대, 안전자산 선호 등 때문이라고 분석해 왔다.

상승하는 적정금리

그러나, 팬데믹 이후 대부분의 연구에서는 추정치가 크게 증가하는 등 반전의 조짐을 보인다.

최근 로렌스 서머스(Lawrence Summers) 하버드대학 교수, 이자벨 슈나벨(Isabel Schnabel) ECB 집행이사 등은 적정금리 하락세를 유발한 요인들의 영향이 정점에 도달하였다고 주장한다.

정부부채 및 재정적자 증가, 공급망 복원을 위한 투자 증대, 친환경 경제로의 전환, 저축성향 감소 등으로 적정금리 추세가 상승으로 전환되었다고 주장한다.

생산성 개선 및 잠재성장률 상승, 기후변화 및 녹색 전환, 인공지능 및 디지털화 등으로 인한 신규 투자 수요 증가와 탈세계화에 따른 중복 투자는 자금 수요를 증가시킨다.

또한, 팬데믹을 거치며 정부 역할이 증가하여 재정적자가 확대되고 정부부채가 증가한 점도 적정금리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최근의 긴축 통화정책에도 불구하고 미국경제가 위축되지 않고 높은 회복력을 보이는 것이 미국의 적정금리가 미 연준이 상정하고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로렌스 서머스. 적정 금리 상승을 주장하는 경제학자
로렌스 서머스

한국의 적정금리

한국의 적정금리에 관한 연구는 드물지만, 한국과 미국의 높은 장기 국채금리 상관관계를 고려할 때 한국의 적정금리 역시 상승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한국 적정금리의 추세적 하락세는 잠재성장률 하락과 경상수지 흑자기조 등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2015년 이후 GDP 대비 경상수지 비율이 최근까지 감소하는 추세를 보여, 이전과는 다르게 적정금리에 미치는 영향이 반전되었을 수 있다.

또한 지난 몇 년간 경험한 높은 투자 수익률로 인해, 경제주체들의 위험선호 현상이 증가하면서 예금 및 적금 등으로의 자금 공급이 감소한 것도 적정금리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즉, 한국의 적정금리 수준은 미국의 영향과 더불어 내부 요인도 달라졌기 때문에 팬데믹 이전보다 높아졌을 수 있다.

따라서 더디게 안정화되는 인플레이션과 통화당국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적정금리 수준이라는 두 가지 요인을 고려해 보면, 2026년까지 금리 인하는 시장의 예상보다 완만하고 더디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GDP 대비 경상수지 비율. 2015년 이후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한국의 GDP 대비 경상수지 비율

마치며..

위의 논의를 종합해 보면, 올해 하반기에 시작될 금리 인하는 내년에도 완만하고 더디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내수경기를 지탱하는 가계, 기업, 건설 및 금융 부문이 모두 단기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 있다.

한국경제의 내수 부진은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워 보이며, 통화정책을 통한 내수 부양도 쉽지 않다.

반도체 등 수출경기가 큰 폭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최근의 환율 급등 등 한국경제의 어려움이 지속될 수 있다.

앞으로 개인과 가계는 물론 기업도 금리인하가 늦어지고 체감하기 어려운 상황에 대비하여 신중하게 의사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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